돌이 떡이 될 때까지

임영주 미술작가


#몸의경계 #육체의바깥 #시공간길들이기 #외계는살갗바로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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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작업실 컴퓨터 앞에 11시간째 앉아 있습니다. 분명 잠깐 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몸의 뻐근함만 남았습니다. 오늘도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쓰는 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요즘 시간과 공간을 길들이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저에게 가장 분명한 경계는 제 몸, 육체입니다. 어쩌면 제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경계는 육체 하나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 몸 바깥으로 제대로 나가 본 적이 없어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몸 바깥으로 나가 보신 분이 있나요?

저는 종종 제 몸을 기계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몸이 하드웨어라면, 거기서 나가는 나는 누구일까. 나를 작동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요. 정신과 혼과 마음은 제 안에 있는 것일까요, 제 몸에 붙어 있는 것일까요. 귀신만은 바깥에서 와 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육체의 바깥을 저는 외계(外界)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외계는 먼 우주가 아니라 살갗 바로 바깥에서 시작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곳으로 나가는 연습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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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이용한 신체 이탈 장치

¹ 앞에 앉아, 눈²으로 가만히 돌을 본다. 한 손으로는 제 몸을 짚어 그 말랑함을 느낀다. 손에 닿는 내 몸의 말랑함만큼 저 돌이 말랑³해질 때까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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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치는 공간과 시간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공간으로는 돌에 닿을 만큼 가까이 가고, 시간으로는 돌이 무를 만큼 멀리 갑니다. 몸은 여기에 두고, 눈과 생각만 다른 시간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육체가 하드웨어라면 영혼이 소프트웨어일까요?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일까요? 또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정신은 나갈 수 있습니다.

여전히 몸 안에서, 임영주


¹ 돌일 필요는 없습니다. 돌은 가장 오래되고 느린 미디엄입니다. 시선을 한곳에 묶어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면 괴석, 새, 불꽃, 화면, VR 헤드셋도 대신할 수 있습니다. VR 헤드셋은 비슷한 일을 더 빠르고 선명하게 합니다. 돌은 그보다 느려서, 다녀온 흔적이 몸에 남을 때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² 눈은 카메라가 아닙니다. 한 점을 오래 응시하면 그 둘레의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차츰 흐려집니다. 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돌과 배경을 가르던 가장자리가 먼저 풀립니다. 오래 보는 일은 더 잘 보는 일이 아니라, 보기를 천천히 그만두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³ 돌이 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돌은 공간에서는 단단하지만 시간 속에서는 무릅니다. 불교 경전에는 큰 바위를 백 년에 한 번씩 부드러운 천으로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한 겁(劫)은 끝나지 않는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말랑해질 때까지 본다’는 것은 돌을 인간의 짧은 시간이 아니라, 돌이 닳고 부서질 수 있는 긴 시간 위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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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미술작가)

한국 사회에서 미신, 신화, 비합리성이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겹쳐 바라본다. 책,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며, 『인간과 나』,『괴석력』, 『고 故 The Late』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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