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훈 극작가
#플레이리스트정리하기 #충돌 #첫싸이월드BGM #나를설명하는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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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작업을 하다가 글이 풀리지 않을 때만 음악을 모읍니다. 보통 스포티파이의 위클리 추천부터 시작하는데,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고 알고리즘이 발전했기 때문에 DJ는 저를 아주 잘 파악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디깅은 자동 사냥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DJ가 자동 재생시키는 곡들을 저는 대체로 3초 안에 스킵합니다. 그 이유는 제 디깅의 목적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타인의 이해가 아니라, 타인과의 충돌이 필요해서 디깅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유연한 스펙트럼을 가진 척하지만 사실 점점 몸과 마음이 굳어가는 저주에 걸렸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릿 댄서와 무용수를 보십시오. 날을 세우고 몸을 움직여 어떤 경계를 넘어서고 싶을 때 낯선 사운드와 음악만큼 도움이 되는 친구는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작품 집필 과정의 시작과 끝에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플레이리스트의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에, 저는 아주 실패한 글을 쓰고 말았다고 자책합니다.
https://youtu.be/MXJfSjcRz90?si=0p9Uaq__zQKp9gcj
시작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음악을 MP3에 모으던 시기였고, 저는 할머니 손에 자란 장남에 축구부였습니다. 대체로 저는 집과 학교에서 모범적인 행실을 보였지만, 가끔 중요한 순간마다 갑자기 치솟는 분노에 기행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행실과의 인지부조화 탓인지 부모님과 선생님은 커다란 당혹감을 드러냈고,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진심은 입에서 나오지 않으니까요. 다행히 그때 싸이월드가 생겼고, 배경음악을 고르는 데 무척이나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긁어, 고심해서 고른 제 첫 싸이월드 BGM은 소녀시대의 <Kissing You>였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오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카톡과 페이스북으로 모두가 넘어갈 때까지, 제 BGM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왜 가끔 그런 짓을 하는지, 오늘 내 기분이 어떤지 설명해주고 싶지만, 매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저는 칸예 웨스트와 미국 동부 힙합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또 노래방에 가서 더 이상 목맨 조랑말들의 청승맞은 발라드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축구부를 그만두고 방과 후에 도서관으로 다니는 버스에 탔습니다. 그때 필리핀에서 유학하고 온 친구가 카리나 파샨의 <Slow Motion>이란 곡을 들려주었는데, 첫 스킨십처럼 재생과 동시에 음악이 피부에 닿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모와 친구에게도 그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대부분과 불화하며 소설을 몰아 읽고, 그 안에서 신포니에타 같은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곡을 발견했습니다.
https://youtu.be/seTW-MKrRKc?si=qX7WpuJzxBpHzlur
대학 때는 바흐와 멘델스존을 좋아했습니다. 하우스 음악을 듣겠다고 클럽에 가보기도 했고, 군대에서는 듀크 엘링턴과 뉴진스를 덕질했습니다. 진득한 편은 아니어서, 누군가 너는 이런 취향이구나 짐작할 때쯤이면 저는 이미 철새처럼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지금 제 최신 지인들은 제게 대니얼 시저나 도자 캣, 클레오 솔의 음악을 보내오지만, 이제 막 30대가 된 저는 사실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평소에 음악은 거의 듣지 않고, 사우나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정도가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절에 저를 만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아주 다르게 저를 바라봅니다. (모두가 그러시지요?) 더구나 이제는 SNS 계정도 없고, 업데이트를 원할 만큼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저 역시 저를 설명해야만 하는 당위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저는 지금도 상대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인 것처럼, 그냥 그런 척을 합니다. 첫사랑조차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이고, 어차피 남을 것들은 알아서 남고, 그때 듣던 음악이나 지금 당장 듣는 음악보다는, 제가 거쳐온 이 디깅의 여정이 그나마 저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디깅에 실패하는 하루도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온 세상이 진부하게 느껴질 때, 저는 아내에게 연락합니다. 그러면 음악사를 공부했고 제법 세련된 리스트를 알고 있는 아내는 10분 안에 답장을 보내옵니다. 답장에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반응을 기대하는 표정이 선하기 때문에, 저는 가끔 그 음악이 제 범주를 벗어났거나 너무 길다고 느끼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일단은 끝까지 다 듣습니다. 그리고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면서 속으로는 생각합니다. "대체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어" 아마 제가 그렇게 말하면 아내는 그 반응에 자부심을 느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내의 첫 싸이월드 BGM은 윤하의 <혜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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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훈 (극작가)
2024 DAC Artist로 선정되었다. 현재 사운드울프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희곡 <도그 워커의 사랑>, < I'm 파프리카 > , <그게 다예요>를 썼다.
수상 2023 제60회 동아연극상 희곡상 <그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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