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밀 소설가 ∙ 번역가 ∙ 에세이스트
#커피의목적 #소설가의카페 #딱30분 #커피만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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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카페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거요. 휴대폰 없이, 태블릿 없이, 노트북 없이, 책 없이, 동행 없이, 그냥 혼자 앉아서 커피만 마시는 일. SNS에서 보니까 이런 사람을 ‘사이코패스’ 같다고 하는 밈이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돼요. 보통 사람들은 커피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지 않으니까요. 커피는 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잖아요.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촉매제. 작업이나 공부에 집중하게 해주는 연료. 독서나 영화 감상에 곁들이는 양념. 카페 역시 단지 ‘커피를 판매하는 장소’만은 아니죠. 사교와 몰입을 위한 공간을 단기 임대해주는 곳, 그것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카페의 역할이에요. 흔히 한국인들은 커피를 대단히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 한국인이 집착하는 건 커피 그 자체보다는 생산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커피 맛을 참 좋아해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산미 있는 커피예요. 특히 여름에 얼음을 넣은 에티오피아 계열 원두커피를 마시면 금세 기분이 좋아져요. 새콤하고, 청량하고, 산뜻하고, 화사하고, 향긋하죠. 집에서도 하루에 커피를 두 잔은 꼭 내려 마시는데 첫 잔은 아주 가볍고 드라이한 맛으로, 둘째 잔은 좀 묵직하거나 쥬시한 맛으로 해서 대비되는 느낌을 즐긴답니다. 때로는 커피 원두 봉투에 적혀 있는 노트들을 읽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던데,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베리, 베르가못, 재스민, 자몽, 천도복숭아, 장미, 홍차, 시나몬, 흑설탕…….) 아, 카페 가는 것도 좋아해요. 다양한 카페들이 제공하는 개성 있는 커피와 매력적인 공간과 분위기를 진심으로 즐겨요. 하루 온종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도 더러 있어요(물론 사장님께 폐가 될까봐 커피와 음식을 여러 번 주문하거나,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기지만요). 내가 아는 보석 같은 카페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소설가의 카페’ 뉴스레터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카페와 커피가 없었더라면 소설가로서의 나도 없지 않았을까 싶기까지 해요.
그런데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것치고는, 저 역시 오롯이 커피만 마시는 때가 없는 것 같아요. 커피를 앞에 내려놓고 첫 모금을 마시고는 “와!”하고 감탄한 다음, 곧바로 노트북을 켜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거든요. 저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라 생산성의 노예인가 봐요. 딱 30분쯤 혼자 가만히 앉아서 커피만 마시는 시간을 즐길 법도 한데도, 그만큼의 여유조차 없는 거죠. 잠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나.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마저도 생산적으로 쓰고 싶어 하는 나. 연인과의 데이트마저도 생산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나.
그러다가 그런 나 자신에게 때때로 완전히 지쳐버리는 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로, 백석 말마따나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시간들이 찾아와요. 그러느니 카페에서 30분 동안 커피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행복할 텐데 말이죠!
아, 안 되겠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실천해 봐야겠네요. 집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에 찾아가서 30분만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볼래요. 솜씨 좋은 서버가 좋은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기후 위기가 심해지면 진짜 커피를 마시기가 점점 힘들어질 거라는 점을 되새기며, 내가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호사인지 생각하는 시간. 이 맛과 향기를 온전히 감각하며, 이 자연에, 에티오피아의 농부들에게, 이 카페의 서버에게 감사하는 시간. 딱 30분쯤. 그리고 “오늘 사이코패스처럼 커피만 마셨다”라고 사진 찍고 SNS에 인증샷 올리고 싶은 충동도 참아볼래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당신도 한번 도전해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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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하는 커피와 디저트 페어링
모모스 커피의 '프루티 봉봉'이라는 커피를 차갑게 내려서 라임 파이나 레몬 파이를 곁들여보시길 추천해요. 산뜻하고 상큼한 시트러스 향과 맛이 여름에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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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밀 (소설가 ∙ 번역가 ∙ 에세이스트)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본명으로 영미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로드킬』 『멜론은 어쩌다』, 장편소설 『너라는 이름의 숲』,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사랑, 편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인센디어리스』 『네 사랑을 먹어라』 『기쁨의 황제』 『조반니의 방』 등이 있다.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향긋한 것을 찾아나서는 데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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