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수민 극작가
#너와나 #요상한경계 #나인척 #쌍둥아 #이해의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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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나수경이 나인 척하고 누군가를 우연히 만났다. 일부러 나인 척하려던 건 아니고, 늘 그렇듯 뜻하지 않게…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굴러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수경을 나수민으로 오해한 누군가를 길 걷다 만난 건데, 문제는 나수경이 ‘사실 저는 나수경이올시다’라고 바로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수경은 나인 척 그 사람과 길을 걸었고, 잠시 근황을 나눴고, 맨날 들고 다니는 이클립스 사탕을 나눠줬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수경은 생각했다. 근데 저 사람 누구지? 그러고는 내게 전화해서 ‘방금 내가 너인 척하고 누구를 마주쳤는데, 이런저런 인상착의에, 나이는 어느 정도고,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나눈 거 보면 언젠가 같이 일했던 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흠, 그렇구만… 전화를 끊고 나도 생각한다. 근데… 그 사람이 대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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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싶으시겠지요. 기획자로 활동하는 나수경이라는 사람과 저는 일란성 쌍둥이랍니다. 얼마나 닮았냐고 하면, 서로의 은행 업무를 대신 봐줄 정도로 닮았는데요. 지금도 친척들은 나와 나수경을 구분하지 못하고, 대강 ‘쌍둥아!’ 하고 뭉뚱그려 부르곤 합니다. 그럼 우리 쪽에서도 대강 둘 중 하나가 대답하는 식이지요.

출처: 나수민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경계란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는 그 경계를 좀처럼 나누기가 어려워 애먹었는데요. 사람들이 나를 나수경과 한 사람 취급하는 게 싫으면서도 어쩔 땐 그냥 하나로 뭉뚱그리고 싶기도 했어요. 일란성 쌍둥이로 삼십년을 넘게 살아보니, 이젠 조금 알겠다 싶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경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어요. 초등학교 교실에 있던 오래된 책상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운데요. 교실 책상을 보면, 그간의 역사(?)에 따라 수많은 금이 그어져 있잖아요. 어쩔 땐 이쪽이 훨씬 넓고, 저쩔 땐 저쪽이 훨씬 넓고, 또 가끔은 정가운데를 똑 나누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금을 그어 버리기도 하죠. 결국 경계도 관계나 상황에 따라 계속 움직이고 옮겨가며 변하는 거구나 싶어요.
희곡을 쓸 때도 이런 감각이 자주 침입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섬X희곡X집》의 <누사레시피>라는 희곡에는 ‘월’과 ‘수’, 두 인물이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요. ‘월’은 금을 지키며 배드민턴을 치고 싶어 하지만, ‘수’는 계속 금을 넘어와 마구잡이로 공을 칩니다. 덩달아 금의 위치도 시시각각 바뀌지요. 처음엔 화를 내던 ‘월’도 마구잡이 배드민턴에 푹 빠져듭니다. ‘월’이 “여기까지”라고 고정해 둔 경계를 ‘수’가 계속해서 밀고 당기고 변화시키며 요상한 재미를 알려준 거죠. 이렇듯 경계는 몸을 부풀리며 일어서기도 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도 하면서 계속 모습을 바꿔 가는데요. 이쪽저쪽 침범해 가면서, 뻔뻔한 모양새로. 그런 경계를 품고 세상을 보면 요상하지만 확실히 더 재미있어요.
간혹 사람들은 내가 나수경인지 나수민인지 구분하고자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봅니다. 당연히 나도 그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봐요. 내 얼굴에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자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아닌가 맞나 헷갈려하는 눈썹과 벌렁거리는 콧구멍과 아하! 알아냈는지 슥 올라갔다가 어라? 다시 내려가는 입꼬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너’도 아닌 경계에 놓인 재미를 알게 되는데요. 나는 나수경도 될 수 있고, 나수민도 될 수 있고, 가끔은 둘 다 되기도 하며, 어쩔 땐 얘도 걔도 아닌 미지의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상한 경계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요.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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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수민 (극작가)
희곡을 쓴다. 일상과 환상이 뒤섞인 글쓰기를 즐겨하며 오해와 이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이 좋다. 창작단체 비빌언덕과 함께하고 있다.
작 <99%천재일기>, <섬X희곡X집>, <쾅>, <늦는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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