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윤 소설가∙스탠드업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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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별별 질문을 다 듣습니다. 셔츠 정보부터 국내 힙합씬에 관한 견해까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무엇이 ‘농담’이고 무엇이 ‘무례’라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크리스 락(Chris Rock)은 이런 기준을 적용해 왔다고 해요. ‘행동은 다루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농담하지 않는다.’(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편 크리스 락은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Will Smith)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전적으로 크리스 락의 편입니다만 전설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의 명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한 뒤로 관련 단행본과 논문, 직간접 경험을 종합하여 마련한 기준이 제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농담한다고 해도 ‘무례하다’라며 공격받지 않을 가능성이 0은 아니에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까지가 이 직업의 일부인 걸까요. 그럼에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이를 번복하는 것, 참 성실한 태도지요. 완고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허탈해하거나 마냥 해방감을 느끼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음 질문도 자주 듣습니다. 다소 비슷한 맥락의 질문이죠. “농담의 적정 수위와 선을 어떻게 설정하시나요?”

출처: 원소윤
농담을 ‘쓸’ 때, 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관해 얘기해 볼게요. 우선 저는 소재에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제 태도를 돌아보죠. 카리스마 있어 보이고 싶어 위악을 부리는 건 아닌지 점검합니다. 다시 말해 의도와 방식이 저의 기준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조심하는 특정 소재도 있습니다. 거부감이 들어서 발음할 때 혀가 꼬이는 소재도 있어요. 그게 뭔지는 사적인 내용이어서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농담의 선을 정하는 기준은 상당히 사적일 수 있어요. 근친상간·장기매매를 다루는데도 비인간 동물의 죽음은 재현하지 않는 어떤 감독의 사연처럼 말이죠.
농담을 ‘뱉을’ 때는 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얘기해 볼게요. 공연장에서 관객의 연령대와 성별, 공연장의 위치(지역)에 따라 조율하는 코미디언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상황 파악에 굼뜨고 다양한 결의 농담이 있지도 않아서 대체로 준비해 간 농담을 읊습니다. 언뜻 뚝심 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냥 능력이 부족한 겁니다. 그런데요, 이런 저도 꽤 과감하고 유연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다루지 않을 거라, 못할 거라 여겨온 소재의 농담을 뱉는 날도 있어요.
믿는 날 그러합니다. 내 농담을 믿고 관객을 믿는 날이요. 누가 뭐래도 이건 웃겨. 그리고 이 농담의 뉘앙스를 알아줄 관객이야. 이런 농담했다고 나를 때리진 않을 거야.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늘 있었던 일을 다 잊어줄 거야. 나도 관객을 믿고, 관객도 나를 믿는 날엔 정말 즐겁습니다.
‘농담의 경계’에 관한 질문, 자주 듣지만서도 매번 흥미로워요. 이 기쁨을 여러분도 맛보시길 바라요. 저한테 묻지 마세요. 그 누구한테도 묻지 마시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공연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면 터지는 대로 한번 웃어보세요. 그러면서 나는 무엇에 웃는지, 누구의 농담에 (안) 웃는지, 정말 그러한지, 참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 발견 못 한 웃음벨이 몇 군데 더 있진 않을지, 자문하며 농담과의 궁합을 따져보세요. 농담의 몸을, 농담에 반응하는 몸을 탐구해 보세요. 웃은 것에 후회도 해보세요, 그러고는 같은 농담에 또 웃어도 보세요. 여러분 자신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게 될 겁니다.
그 앎이 허물어지거나 단단해지는 과정도 공연장에서 겪어보세요. 특권이라 여겨지는 게 취약성임이 밝혀지고 그 반대 사실도 드러나는 곳이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장입니다. 그래봤자 특권은 특권이고 취약성은 취약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이렇듯 이동하고 진동하는 경계 덕분에 우리는 많이 웃게 되지요. 저는 ‘경계’ 자체보다 그 경계로 우리가 무얼 하는지가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의 선을 회초리 삼아 휘두르는 사람도 세상엔 있잖아요. 선으로 결박하는 사람도, 줄넘기하는 사람도, 간지럽히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여러분이 어디에 어떻게 선을 긋는지가 궁금하진 않습니다. 저마다 뜻이 있겠지요. 다만 궁금해요.
그렇게 그은 선으로 무얼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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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윤(소설가∙스탠드업 코미디언)
대전 성모병원 출생. 명리학자가 경고하길 “바늘 같은 사람이니 되도록 말을 삼가시오!”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원라이너(One-Liner) 농담을 구사한다. 2025년에는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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