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현실 세계, 그 사이에서 곡예하는 글쓰기

주은길 극작가∙연출가


#경계에서_춤을 #뉴스와판타지 #말하는새 #이야기가하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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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연극과 현실 세계가 맞닿아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지는 것 같아요. 아침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들은 꽤나 비현실적인 순간들이 많거든요. 글을 쓰다 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라는 말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이제 그 말조차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현실 세계는 연극 같고, 연극은 현실 세계 같은 하루하루예요. 무대에서 벌어지던 판타지가 이제는 결코 판타지스럽지 않고 무서운 기시감이 생기곤 하죠. 그러니까 우린 요즘 그 경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즐거운 건지, 그저 하루를 넘기기 위해서인지 모른 채요.

어느 날 창가에 새가 한 마리 날아와 말을 겁니다.

“포위되었으니 투항하라”

신기한 일이죠. 새가 말을 하다니.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지 환상을 보는 건지, 혹은 이 모든 게 연극이거나 누군가의 소설이거나. 모를 일이에요. 과연 새가 내게 말을 거는 것이 비현실적인 건지, 포위되었으니 투항하라는 텍스트가 비현실적인 건지 역시, 모를 일이에요. 그런 고민에 사로잡혀 새를 멍하니 쳐다보는데, 새가 입을 쩌억 벌려요. 신기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자 ‘펑!’하고 폭발. 그렇게 나는 죽습니다. 숨이 멎어가며 몇 가지 생각에 잠겨요. ‘그 새는 뭐였을까?’, ‘왜 폭발한 것일까?’ 그러다 꽤나 신빙성 있는 생각에 도달해요. ‘아! 전쟁이 일어났구나! 그 새는 살상 무기였구나! 그래서 난 죽은 거구나!’ 하지만 모를 일이에요. 그 진실을 모른 채 나는 눈을 감습니다.

우리는 연극의 이야기일 수도 현실 세계일 수도, 한쪽으로 단정 짓지 못하는 모호한 세계에 서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는 이제 단순한 희망 노래를 고집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내 앞에서 말하는 것이 새인지 폭탄을 가지고 날아온 드론인지, 이제는 구분 짓지 못하는 세계니까요. 그것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전쟁 혹은 사랑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주제가 무엇이든, 내가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감각하는 것. 그게 지금 이야기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연극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햄릿의 말이 언젠가부터 그 기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오히려 연극들이 현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커튼 같다는 느낌을 받은 후부터였어요. 전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항하고, 현실 세계를 비춰내는 글들. 새가 아니라 폭탄이라고 말해주는 글들. 희곡은 그렇게 지금 그 경계에 놓여있어요.

어떤 무대언어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양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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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길(극작가∙연출가)

극단 그린피그 창작자. 내 삶과 내가 사는 사회에서 느끼는 부분들을 우화스럽게 재해석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아름다운 기승전결보다 그것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할지 탐구한다.

작/연출 <양떼목장의 대혈투><후-하!><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 외

수상 2025 대산문학상 <양떼목장의 대혈투> 2023 신춘문예 부산일보 희곡부분 <산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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