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존재하는 연습 - 가지텃밭에서

강윤민지 배우


#강화도살이8년차 #매실나무 #가지 #쿵이지킬이땅콩이🐱 #관심없던것에마음을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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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힘들 때마다 저를 지탱해주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 문장들을 되뇌다 보면 힘듦이, (과장해서)사소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일 없다만은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마당 앞 매실나무 (사진제공: 강윤민지)

마당 앞 매실나무 (사진제공: 강윤민지)

문장들을 가만히 모아보니, 모두 자연에서 비롯된 말들이었습니다. ‘자연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강화도에 온 지도 어느덧 8년째입니다.

마당에는 큰 매실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매실나무인지도 몰랐습니다. 매실은 늘 매실청이라는 액체로만 만났지, 나무의 형태로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집 할머니께서 “그거 매실나무예요. 매실 따서 매실청 담가 먹어요.” 하고 알려주셔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볕이 유난히 뜨겁던 6월의 어느 날. 매실나무에 초록색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와, 매실이다!” 앞집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해 처음으로 매실청을 담갔습니다. 매년 6월이 기다려질 만큼 그 기쁨은 컸습니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어느 해에는 친구들과 매실청을 담그는 날을 따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매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푸르던 매실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변하더니, 말라가며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안타까웠지만 그 모습을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각자의 속도와 때가 있다.” 힘들 때 저를 위로하고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문장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가지텃밭 지킴냥이들 (사진제공: 강윤민지)

가지텃밭 지킴냥이들 (사진제공: 강윤민지)

강화도에 살면서 하루 중 가장 자주 나가는 곳은 텃밭입니다. 가서 오래 있지도 않습니다. 잠깐 보고, 흙을 밟고, 다시 돌아옵니다. 운이 좋을 때면 함께 지내고 있는 쿵이, 지킬이, 땅콩이가 냥냥거리며 그 시간을 함께해 줍니다. 텃밭에는 여러 작물을 조금씩 심고 있습니다. 가지도 그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는 가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가지를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과장해서)보~라색이, 반짝반짝, 탱탱하게 빛나며, 아름답고 위풍당당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관심 없던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날 이후로 저는 강화도에서 ‘가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텃밭에도 ‘가지텃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자연에서 온 문장들이 저를 지탱해주고, 자연은 저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연기를 하다 힘들 때면, 저는 자꾸 자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연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나무는 그저 서 있고, 바람이 불면 흔들릴 뿐이다. 자연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데, 나는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한다.

저 존재(나무)처럼, 그냥 존재(연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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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민지(배우)

없는극장 공동운영진 강화도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텃밭하고, 연기하는 사람이다.

공연 <걷는 객석: 극장의 조각들>, <커튼>, <만선>, <유원> 외

수상 제3회 이영만연극상 배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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