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공존이 운명인 존재

김산하 작가,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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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외롭습니다. 하나의 개체로서 이 세상에 나와 수십 년에 걸친 긴 삶을 구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힘든 순간일수록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절절한 단독자인지 깨닫지요. 이 몸을, 이 마음을 책임지는 건 결국 나 뿐이구나. 그래, 인생은 결국 고독한 거야.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입니다. 아니, 틀린 쪽이 훨씬 크다고 해도 무방할 거예요. 왜냐하면 조금만 살펴보아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른 존재들과 촘촘히 엮여 있는지,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쉽게 알게 되기 때문이에요. 가족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고,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의 수많은 타인들 덕에 먹고, 자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어떨 땐 내가 스스로 직접 하는 게 하나라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자연으로 그 영역이 확대될 때 우리의 의식은 동일하게 작동하길 거부하는 경향이 있죠. 인간 세상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연에 의존해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대의 모습을 상정하곤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연계 전체에서 인간만 홀로 독립해 나온 생물인 양, 우리의 독보성을 주장하고 초월성을 숭배해요.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데 자신을 으뜸이라 여기는 자는 타자를 평가절하하기 쉬운 법이지요. 게다가 우리는 우리끼리도 같은 행동을 범합니다. 어쩔 수 없이 타자와 부대끼며 살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아요. 과거의 인류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친족,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모두 허물어져 가거나 이미 폐기된 유산이에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지만, 전혀 같이 살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또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공존에 무감각하고 무뎌진 우리에게 가장 낯선 것, 같이 산다고 인정하지도 않았지만 같이 살고, 심지어는 쫓아내고 싶어도 꿋꿋이 함께 사는 이들이 있어요. 바로 동물입니다. 인간의 시스템 안으로 복속 시킨 가축이나 반려동물 말고, 야생 동물 말이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속한 종의 진화적 역사에 따라 사는 야생 동물은 인간 이웃조차 무의미하게 여기는 현대인에게 정녕 의아하고, 불편하고, 황당한 존재들이에요. 어떻게 우리의 세상인 이곳에 저런 애들이 있을 수 있지? 우리는 못마땅하게 묻습니다.

베란다에 찾아온 어치, 방충망에 붙어 우는 매미, 아파트 단지 연못에서 우는 개구리, 뒷산 산책로에서 마주친 너구리, 예상치 않게 야생과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놀랍고 신기하면서도 이것은 뭔가 예외적이라고 판단해요. 인간 단일종의 서식지인 도시에서 다른 종이 튀어나오는 사실을 이상히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도시에 출현한 멧돼지는 반드시 죽임으로써 잘못된 요소 간의 이질적 혼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야생은 한 번도 인간의 허락이나 승인으로 존재했던 적이 없습니다. 인간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불과하고도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기 전부터 있었고, 차지한 뒤로는 주변부에서 살며 기회를 엿보며 지내왔어요. 팬데믹 당시 인간이 실내로 들어가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야생 동물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었지요. 우리가 같이할 마음이 없어도 동물은 언제나 ‘같이’ 있어 왔어요.

따라서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함께 사는 동물에 대해 유일하게 취해야 할 행동은 그들에 대한 자세를 바꾸는 일이에요. 아무리 싫다고, 징그럽다고 불평해도 야생은 떠나지 않습니다. 여기도 엄연히 그들의 집이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오히려 박멸하려고 할수록 더 원치 않는 존재들이 더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담스러워도 같이 있음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타자에 대해 취해야 할 최소한의 태도예요. 필자는 야생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표현하기 위해 <참을 수 있는(없는) 존재의 야생성>이란 제목의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전시는 낯선 동물 울음소리가 진동하는 둥지, 실제 동물의 사체가 널브러진 현장, 최상위 포식자 늑대의 그림자 등을 선보였습니다. 전시는 묻고 있었죠. 당신은 이 소리를, 이 광경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나요? 야생을 마주하고 같이 살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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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참을 수 있는(없는) 존재의 야생성》전시 전경

2024 《참을 수 있는(없는) 존재의 야생성》전시 전경

야생 동물과 같이 산다는 건 어린이 동화에서처럼 사이좋게 어깨동무 하며 지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깝거나 멀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종류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성향과 생각과 소망과 상관없이, 이 세상을 나와 함께 사는 생물들의 삶을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그들도 나처럼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삶이라는 것을 시도하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들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엮여 자연 생태계라는 것이 탄생한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는 것을요. 같이 사는 것이 존재의 기본이에요. 다른 존재 방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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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 (작가, 영장류학자)

『리와일딩 선언』, 『비숲』, 『습지주의자』, 『스톱!』, 『김산하의 야생 학교』, 『살아있다는 건』 등을 쓰고 『활생』, 『무지개를 풀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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