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극작가
#시 #행간 #침묵살리기 #읽기도훈련 #희곡읽기 #호흡의언어
<aside>
매년 방학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느 대학교의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대요. “여러분, 방학 때 꼭 한 번 그리스 여행을 다녀오십시오.” 방학이 끝나고 그리스에 다녀온 몇몇 학생들은 또 이렇게 말한대요. “별로 재미가 없던데요?” 그러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그건 상상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오래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 일화를 보며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지요. 저 역시 그리스에 가 본 적은 없으나, 혹 갔다 하더라도 무너진 건축물을 바라보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시시하다고. 그날 이후로 제게 작은 변화가 생긴 것도 같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요, 제 작품을 쓰기 위해 뭔가를 상상하는 것만큼 다른 작품을 읽어내기 위해 상상하는 데엔 다소 무관심했거든요. 상상한다는 말을 참 좁게 썼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일화가 떠오릅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시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각종 시집들을 참 열심히도 읽었지요. 심지어 시집 한 권을 다 읽는 데 30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시 한 편에 고작 30초에서 길어야 1, 2분이면 완독 끝. 시는 어떻게 읽는 것인가. 음미하라고 하더군요. 언어를 음미하고, 행간을 들여다 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로 그저 느리게 읽어봤습니다. 음미도 모르겠고, 행간을 어쩌라는 건지! 한참 시간이 흐르고서야 쬐끔 알게 됐습니다. 제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쓴 희곡을 공연하기 위해 연습하던 중에 배우에게 살포시 이런 부탁을 했더랬습니다. 지시문에 적힌 ‘침묵’을 조금만 더 살려달라고. ‘읽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만큼 훈련이 필요했던 걸지도요.
그렇다면 희곡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전 아직도 그리스 비극과 몇몇 고전 희곡들의 재미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늘어놓지요. 기대한 것보다 시시하다고. 별로 재미가 없다고. 희곡을 읽는 건 무너진 건축물을 바라보며 상상하고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참 닮았습니다. 그래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그들이 뱉는 말 이면의 마음을 상상합니다. 말맛의 호흡을 쫓아 읽어 나가다 보면 그 끝에서 돌연 ‘침묵’의 지시문을 발견하고, 나도 거기서 호흡을 멈출 땐 가끔 정말이지 짜릿합니다.
희곡은 글로 쓰인 ‘말’이고, 때문에 ‘호흡의 언어’라고 전 생각합니다. 희곡을 펼치고 첫 지시문과 첫 대사를 읽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상상해야 하며, 어떻게 읽을지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활자는 살아 숨 쉬는 누군가의 ‘말’이 됩니다. 그때 가끔 어떤 희곡은 내 마음을 들었다 놓을 수 있을 테지요.
</aside>
<aside> ✏️
김도영 (극작가)
어릴 땐 하도 재잘대는 걸 좋아해서 혹자는 크면 말 잘하는 변호사가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다 보니 입 대신 텍스트로 재잘대고 있는, 극작가가 됐다. 과거, 명절 단골 만화 『머털도사』 속 왕지락을 향한 머털이의 분노와 복수심을 보며 머털이는 무슨 마음일까 궁금했고, 만화 『배추도사 무도사』의 할미꽃 전설 편에서 산에서 얼어 죽고 만 할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저 할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죽었을까. 우스갯 소리 같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궁금해지게 된 내 인생의 시발점이다. 역사극과 시대극을 좋아하며, 좋은 이야기는 발이 달려 스스로 제 갈 길을 간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중이다. 2013년 단막극 <심야 정거장>으로 데뷔했다.
작 <금조 이야기><왕서개 이야기> 외
</aside>
<aside> ❗
**김도영 극작가와 함께하는 <아트 클래스 – 토크>
읽기 – 희곡 이야기를 말하다**
12.19(금) 오후 7시 30분-9시 두산아트센터 Studio DAC 무료(1인 1장)
❋ 11.21(금) 오후 4시 예약 오픈
[Studio DAC]Studio DAC: 아트 클래스
</aside>